위시리스트에 있던 영화인데 네이버에서 무료길래 급 감상했다. 호흡이 느린 다큐. 몸이 불편한 노인의 일상생활을 천천히 보여주고, 이중섭의 작품들을 보여줄 때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게 천천히 잡아줘서 좋았다. 이중섭도 아내도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고급 예술교육을 받았고 가정을 꾸렸으나 시대적 환경으로 인해 너무 많은 아픔을 겪었다. 역사나 사회적 환경이 어딘가 찜찜한 구석이 없잖아 있지만 그와 상관 없이 개인들의 삶이 너무 안타깝다. 가족을 그리워하며 홀로 죽음을 맞은 게 39세라니 너무 젊은 나이다.

주고 받은 편지들에 매번 직접적으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천하제일의 여인, 소중하고 또 소중한 나만의 천사이자 훌륭한 남덕,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는 등의 표현을 한 것이나(특히 편지에 그린 그림들 너무 예쁘고 또 애틋하다), 당시의 사회적 인식과 상관 없이 학생 때도 결혼 후에도 팔짱 끼고 손잡고 여기저기 다녔다는 것, 서로 끝까지 지지하고 사랑하고 아낀 것, 예쁘고 부러운 사랑이다. 부인과 아이들, 제주도에서의 추억(이라고 하기엔 아름답지만은 않았지만)을 그린 그림들이 너무 따뜻하고 예쁘다. 마사코 씨가 "아버지 아버지" "오냐"를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기억하는 걸 보고 미소가 지어지면서 뭔가 애틋했다.

부차적인 건데, 마사코 씨 집이 기독교 집안이라 결혼에 반대가 없었다는 것을 보고 와 정말 진정한 기독교다 했다. 한국도 전통 기복신앙에 기독교 포장 그만..!

그리고 또 부차적인 건데 이중섭이 죽은 게 결국 영양실조였다니 허무하다. 당시에 함께 활동하던 화가 분은 "불쌍하다, 부인이 일본으로 가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하시는데 어이가 없다. 혼자 두면 영양실조로 죽을 때까지 앞가림을 못할 정도로 남성을 우쭈쭈 키워놓고는 그것마저 여성에게 책임을 묻는 사회는 어디서부쳐 고쳐먹어야 하나?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일이니 가볍게 한 말이라고 하더라도 도대체 어떻게 사고의 흐름이 그렇게 되는지 어떻게 그렇게 사람을 도구적으로 생각하는지 경악스러웠다. 여자는 남편 (돈 한 푼 못 버는)그림 그리는 거 다 배려하고 존중해주면서 산에서 부추 뜯고 바다에서 게 잡아와서 가족들 뭐라도 먹이고 일본 가서는 재능 살려서 일도 하고 애들도 혼자서 다 키웠는데, 제 몸 하나도 스스로 건사하지 못하면서 그저 많이 사랑해줬다는 것만으로 칭송받는 남편님ㅋㅋㅋㅋ어이가 업쏘... 어디선가 봤던 말이 떠오른다. "모든 위대한 남성의 뒤에는 위대한 여성이 있다. Behind every great man is a great woman." 라는 말이 이제는 "모든 위대한 여성의 앞길은 남성들이 막았다"는 말로 읽힌다던. 디자이너로서 재능이 있었지만 결혼을 결정한 뒤엔 학업을 중단하고 집안일을 배워야 했던 마사코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 으레 그런 것이니까..

에휴 이런 식으로 말하자면 답답한 문제가 한둘이 아니니까 이쯤 하고. 어쨌든 영화에 등장하는 이중섭의 작품들도 좋고 편지로 두 사람의 마음이 잘 전달되는 점도 좋았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너무 무겁지도 않고 일본 특유의 소박하고 잔잔한 느낌이 좋았다. 무료니까 궁금하다면 췌킷 http://naver.me/FaQ8sp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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