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나왔고, 연예인들과 정치인들로 인해 이슈가 된지도 꽤 됐다. 그러나 우울해질 것 같아서 미뤄뒀던 책. 역시나 곳곳에서 울음이 났다. 주로 내가 겪었던 이야기들이 나올 때 그랬다. 그냥 눈물이 흐르는 울음이 아니라 어렸을 때 엄마한테 혼나면 우는 것처럼 숨이 차는 듯한 울음이었다.

차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1982년부터 2016년까지 김지영 씨의 삶을 담담하고 간결하게 담았다. 한 사람의 삶에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끊임없는 폭력이 가해지는 이야기다. 그런데 너무도 나의 이야기고 엄마의 이야기고 다른 수많은 한국 여자들의 이야기다. 김지영은 우리와 닮았고, 김지영이 처하는 상황들은 보편적이다. 통계를 기반으로 했기에 더 그렇다. 오히려 생략된 이야기가 많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동시에 충격적이다. 아무렇지 않게 겪어왔던 일들은 사실 혐오였고 폭력이었다. 게다가 가해자도 의도적이지 않았거나, 아예 가해자가 없을 때도 있다. 가부장제는 나치즘보다도 잔인한 것일지 모른다. 모든 이들의 가치관 속에 은밀하고 뿌리깊고 복잡하게 자리잡았다는 점이 무섭다. 그 사람이 얼마나 선하고 좋은 사람인지와는 관계가 없다는 점이 무섭다.

단 한 구절도 허투루 읽을 수 없었다. 의미 없는 문장은 한 개도 없는 것 같았다. 모든 문장이 독자에게 무언가를 던지고 있었다. 소설 뒤에 덧붙은 작가의 말과 해설까지도 정말 좋았다. 정당한 보상과 응원, 더 다양한 기회와 선택지. 김지영의 보편성, 입을 닫게 된 김지영, 그리고 연대. 이 책은 페미니즘 입문서로도 좋고, 남자든 여자든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닌데 여자라고 해서 뭐가 그렇게 힘들고 뭐가 그렇게 피해자라는 거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말과 해설까지 다 해도 190페이지밖에 안 되니 가볍게 읽기도 좋다. 물론 마음은 가볍지 않았지만. 그러게. 나를 자꾸만 울게 만든 건 무슨 감정이었을까? 안쓰러움, 억울함, 분함, 답답함, 슬픔, 화, 그리고 자기연민과 자책도 있었던 것 같다. 요즘 응어리나 한이 맺힌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자꾸만 이해된다. (책을 읽고나서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empowering music'을 검색해 들었다. 웃기지만 한결 나았다. 음악의 힘이란.)

작가의 말처럼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목소리를 내고 연대하고 싸우길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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