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쨍 이 ~ ~ ~)

 

하버드 로스쿨 시절부터 결혼과 변호사 생활과 연방대법관 자리를 거치며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가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다큐.

루스가 매우 온건해보인다는 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93년에 연방 대법관이 됐을 때 대법관 9명 중 중도성향 쪽에 속했고. 그게 그의 스타일이라고 했다. 양보와 타협을 해야 하더라도 동료들을 포섭하고자 하는. 보수성향 끝자락의 성차별주의자 꼰대 대법관과도 진짜 친한 친구로 지내고. <세상을 바꾼 변호사>에서 루스와는 다르게 시위 나가고 길에서 성희롱하는 아재들한테 쌍욕하고 엄마의 꾸밈노동 비난하는 딸과 부딪혔던 장면이 생각났다ㅋㅋ 어쩌면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서 그게 최선의 길이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온갖 수모를 참으며 조직의 머리에 오르는 많은 여성 직장인들처럼. 물론 걍 멘탈이 무쇠인 걸 수도 있고. 트럼프 쓰레기 발언(ㅋㅋㅋㅋㅋㅋ) 뒤에 '사법부로서 공정하지 못하고 지지후보 친화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그런 식으로 했으면 진즉 이 자리에도 못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참여했던 판례를 보면 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판례들이 몇 개 나오는데, VMI 여성 입학 허가 사례도 인상적이었고, 임금차별 소송 사건이 불과 2006년이었다는 것도 충격적이었다. 남성동료들과 임금이 다르다는 걸 알게 돼서 소송했는데 기한이 지나서 안 된다는 말을 1906년 아니고 2006년에 하고 앉았어. 여튼, 연방대법관 9명 중 9명 모두 여자여야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이전에 9명 다 남자였을 때는 아무도 이의 제기하지 않았다며)는 발언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

그리고 그걸 정말 잘한다.ㅋㅋ 변호사 시절부터 논리로 다 이겨버리는 게 너무 멋있다. 성차별이라는 건 옛날에나 존재했었다고 생각하는 백인 남성 판사들을 앞에 주루룩 두고 어떻게 차분하게 논리를 전개하지? 진짜 감탄스러웠다. 논리와 명석함도 그렇지만 그것도 진짜 재능이다. 쓸모없는 감정에 휘둘리지 말라던 어머니의 가르침이 있었고, 하버드 로스쿨 후배가 된 손녀에게도 논쟁에서 이기고 싶다면 고함치지 말라고 가르친다.

(앗! 여기서 화난 페미들에게 맨스플레인과 tone polishing 하고 싶은 욕구가 치미는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점!저런 건 차분하게 논리 전개하는 걸 업으로 삼기 위해 수년간 열심히 공부하고 수련한 사람들에게나 요구되는 자질이라는 것. "이건 이러이러해서 잘못됐고 이런 발언은 이러이러해서 성차별적이니까 지양해야해" 따위 내가 많이 해봤기 때문에 안다. 그 과정에서 조용히 쌓이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크고, 그게 얼마나 힘들고 지치고 상처로 너덜너덜해지는 일인지. 나도 처음에는 주변 남자들과 논리적이고 온화하게 대화하려고 노력했었다. 근데 본인이 자발적으로 책이나 컨텐츠 찾아보며 공부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닫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나는 스스로의 정신건강을 해쳐가면서 그 모든 사람들에게 페미니즘 튜터링을 해줄만큼 여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처럼 개개출하고 내 삶 챙기기도 벅찼으니까. 페미니즘이 다 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러다 죽게 생겼었다ㅋㅋㅋ 그래서 지금은 나도 걍 화나면 화낸다. 그놈의 선량한 혐오주의자들은 몰랐어 미안 하면 끝이겠지만 화나고 상처받은 것도 난데 참는 것까지 내가 해야겠어?! 페미니즘에 대해 대화하잡시고 지금은 가부장제도 없고 임금격차도 없지 않냐는 사람은(얼마전에 실제로 겪은 일임) 무시하거나, 상대할 여력이 있다면 "ㅋㅋ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지 무식이 창피하지 않니" 한 마디 던져주거나 아님 책이라도 한 권 던져주는 게 낫다. 그러나 잘 지내고자 하는 동료였기에 나는 또 거기다가 그렇지 않다고 설명해줬다네ㅅㅂ좆같다...)

처음부터 법 개선할 소송 찾아다닌 것도 너무 멋있다. 정말 그릇이 큰 사람이기도 하고 어쩌면 숙명 같기도 하고. 이수정 교수님의 "내가 여자가 아니었으면 이 길을 안갔을 거 같다. 여자니까 보이는데 어떡하냐" 하던 말씀도 생각나고. 여튼 그 길로 80대인 지금까지도 현역에서, 정상의 위치에서 정정하게 싸우고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 건강하세요 저의 응원 받아주세요. 그러나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말은 함부로 안 해야지 이제. 뭐든지 잘하고 싶어하는 마음에 지쳤다. Teach girls bravery, not perfection. 난 쓰레기처럼 살 거야. ㅋㅋㅋㅋㅋ^^

 

 

 

'영화, 드라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0) 2020.08.24
불량 공주 모모코  (0) 2020.08.16
결혼 이야기  (0) 2020.02.09
부탁 하나만 들어줘  (0) 2020.02.09
우리들  (0) 2019.09.12

+ Recent posts